‘어떻게 살 것인가.’
도시에서 다양한 직장생활을 하면서 언젠가 정년퇴직하면 자연을 찾아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램을 간직해왔다. 전원생활을 꿈꾸며 부산 근교를 물색하다 몇해전 부산 근교에 작은 텃밭이 있는 촌집도 미리 마련했다.
몇해전 퇴직을 한 뒤부터는 아예 촌집으로 거처를 옮겨 살고 있으나 여전히 농사나 농촌살이에 대해 막연한 생각에 머물던 가운데 우연히 부산귀농운동본부의 생태귀농학교 수강생 모집을 접하고 귀농, 귀촌의 삶이 궁금해 지원했다.
강의와 현장탐방으로 이어지는 70시간의 교육 프로그램은 강사들의 열정과 신념, 그리고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귀농, 귀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선 귀농이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스마트 팜 등 영농기술이 발전하고 귀농인들을 위한 정부의 다양한 지원제도가 있지만 농업을 통해 많은 소득을 올리기에는 여전히 현실적 한계가 있음을 귀농 선배들이 강조했다. 농촌생활에 적응하고 농사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오랜 기간 겪었던 시행착오와 시련을 고백하는 선배들의 경험담은 농사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지나친 욕심을 경계할 것을 당부했다.
더욱이 농약 등을 사용하는 관행농업이 아닌 친환경 유기농업이나 자연순환 농법으로 농사를 지어 생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생태 농업에 대한 소신을 위협하는 숱한 현실적 장애에 맞설 수 있는 남다른 노력과 능력이 요구된다.
자녀교육 등으로 소득이 필요한 중년층이나 창업농을 꿈꾸는 젊은 귀농 희망자들은 보다 많은 정보와 세심한 준비과정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시골살이에 대한 낭만적 환상이나 안락한 도시적 생활 및 사고에 대한 철저한 의식의 전환 없이는 귀농, 귀촌의 삶이 결코 뿌리내릴 수 없다는 것도 현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농촌살이를 하면서도 도시에서의 삶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거나, 자연과 농사일에 동화되지 못한다면 귀농, 귀촌은 일시적 일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귀농, 귀촌을 하는 이유가 거의 도시생활에 대한 염증과 자연에 대한 동경 등으로 시작하지만 의식의 전환을 동반하지 않는 도시에서의 탈출은 임시방편에 그칠 수 있다. 결국 도시 생활이 주는 편리함과 물질적 풍요를 거부하고, 포기하는 결단과 함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지혜와 의지,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삶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가 우선이라고 현장에서 만난 선배 귀농인들은 입을 모았다.
전통 장(醬) 만들기에 대한 열정으로 장인이 된 거창의 귀농인이나 도시의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껴 10년째 지리산에서 산나물 등을 채취하고 양봉으로 즐겁게 생활하는 하동의 귀농인처럼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생태적 삶에 보다 큰 의미와 가치를 지닐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귀농이 경제적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었다.
청도에서 딸기농장을 하며 체험장으로 활용하는 젊은 부부나 고향을 찾아 미나리 농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귀향인을 보면서 농촌에서도 새로운 시각과 전문지식을 갖추면 오히려 경쟁이 치열한 도시에서 보다 경제적으로 성공할 기회가 더 많이 열려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귀농귀촌이 농사짓는 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었다.
천연염색 등 체험 학습 공간인 김해 생태체험학교와 함양 온배움터 생태건축학교, 양산의 수제 소시지 체험장 방문을 통해 농촌이 지닌 ‘치유와 힐링’의 가치를 발굴해 도시인의 안식처로 개조하고, 유전자변형식품(GMO)이나 각종 화학첨가물로 범벅된 식탁을 몰아내고 살아있는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일도 귀농인들의 역할이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경남 함양에서 만난 귀농 선배들은 백전마을 주변에 모여 살면서 친환경 텃밭농사로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해 자급하는 한편 함께 생태 공동체를 이루고, 다양한 취미생활 및 문화활동으로 도시보다 여유로운 삶을 만끽하는 모습을 보여줘 귀농, 귀촌이 고립과 은둔이 아닌 화합과 상생의 터전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귀농귀촌을 묻는 소감에 한결같이 ‘정말 잘한 선택’이라는 대답을 들으며, 또 양산의 어느 숲속에서 ‘콩각시 농장’을 일구며 자연과 어우러진 조화로운 삶을 사는 어느 노부부를 보며 부산귀농운동본부 기원문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진 공존 공생의 삶을 추구하여,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게 하여 주소서’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그늘에서 죽어가는 생태계와 기후 위기로 몸살을 앓는 지구, 권세와 돈, 이념에 매몰된 인간사, 멀리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들려오는 포성을 접하며 자연을 찾아 참된 가치를 지키며 사는, 또 그렇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새삼 소중한 희망으로 다가왔다.
교육을 마치고 들떤 마음에 “우리도 귀촌할까” 넌지시 아내에게 말을 건네자 아내는 “당신 주제를 알아야지요”라며 핀잔을 준다. 화려한 불빛을 쫓는 불나방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도시의 욕망을 벗지 못한 스스로가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초라하기만 하다.
/선돌 최헌(시티팜뉴스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