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동안 집을 비웠다.
사흘 동안 집을 비우고 저녁나절 돌아오니 집에서 돌보던 길고양이 두 마리가 대문 앞까지 뛰쳐 나와 반긴다. 사료를 찾아 주니 허겁지겁 먹는 꼴이 많이 허기졌던 모양이다. 나도 몰래 울컥 눈물이 났다.
두 마리 중 치즈캣인 한 마리는 2년전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3월 어느날 아침 우리 집 마당을 배회하고 있어 먹을 것을 주다 보니 이후로 아예 집고양이처럼 지금껏 우리 집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땐 태어난 지 2개월쯤 되었을 어리고 예쁜 고양이로 ‘예삐’라는 제 이름을 부르면 집고양이처럼 재롱을 곧잘 부렸다. 지금은 덩치가 큰 살찐 고양이가 돼 동네를 휘젓고 다니다 아침저녁 끼니때가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 밥을 달라고 졸라댄다. 지난 겨울에는 집에 남아있던 개집에 전기담요를 넣어줘 추위도 이겨냈다. 생전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촌집에 오면 어느새 예삐부터 찾게 됐다.
그러나 추위나 먹을거리 걱정 없는 순둥이 예삐가 야생의 길고양이 세계에서는 따돌림과 질시도 많이 받는 것 같아 걱정도 됐다. 덩치 큰 동네 길고양이들의 눈치를 보는 듯 먹을 것을 남겨두고, 애써 마련해 준 잠자리도 빼앗기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정 많은 사람의 손길이 생존에 필요한 야성을 잃게 하는 것 같아 고민스러웠다.
그러나 정작 예삐의 고민은 올봄에 시작됐다. 지난 5월 어느날 아침 마당 한켠에 생후 1개월 남짓한 검은 고양이 새끼가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두려움 가득한 눈빛으로 나타난 것이다. 처음에는 먹을 것을 줘도 다가오지 못하고, 다가가면 쏜살같이 숨어버렸다. 칠흑같은 검은색에다 비쩍 마른 몸에 커다란 눈만 꿈뻑거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이 연상됐다.
아내와 나는 ‘저렇게 못생긴 고양이 새끼도 있네’라며 내심 하루빨리 사라져 주길 바랬다. 그러나 검은 고양이는 현명했다. 며칠을 숨박꼭질하더니 결국 자신의 미래가 걸린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고 말았다. 예삐 눈치를 보며 사료를 챙겨 먹고, 사람의 손길을 서서히 허락하더니 급기야 우리 부부를 자신의 보호자로 받아들였다. 검은 고양이라서 ‘네로’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검은 고양이는 치즈색 고양이와는 성향이 달랐다. 먹성이 남달랐고 눈치 빠르고 행동도 민첩했다. 5개월여만에 덩치도 부쩍 커져 이제는 순둥이 예삐를 몰아내고 아예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다. 예삐의 집을 빼앗아버리더니, 순둥이 예삐를 위해 따로 마련해준 집도 자신의 별장처럼 독차지하고 있다. 아침저녁 사료를 줄 때마다 예삐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앙탈을 부리는가 하면, 예삐를 위해 따로 챙겨준 밥그릇에 먼저 고개를 처밀어 같이 다 먹고 나서야 자신의 밥그릇을 비우는 심술덩어리다.
내가 마당에 나서면 걷지도 못할 정도로 따라다니고, 땅바닥에 누워 온갖 재롱을 부리다 예삐가 내게 다가오면 쫓아내려고 안달이다. 결국 밉상 덩어리 네로는 아내의 골칫거리였던 두더쥐 새끼 사냥에도 남다른 실력을 발휘해 우리 집 귀염둥이로 자신의 지위를 굳히고 말았다.
이제 네로는 우리 집 터줏대감이 되었고, 예삐는 잠자리를 빼앗긴 채 끼니때마다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설운 신세로 전락했다. 날아온 돌이 박힌 돌을 확실히 빼버린 셈이다. 그러나 애정을 빼앗겨 방황하는 예삐를 그냥 둘 수는 없다. 길고양이들에게 혹독한 겨울이 오기 전에 네로뿐 아니라 예삐를 위해서도 따스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줄 계획이다.
어미를 잃고 품속에 들어 온 생명을 보살피며, 햇살 좋은 날 기어이 내 품에 파고들어 낮잠을 즐기는 어린 짐승의 체온을 느끼며 조금씩 사랑을 배워가고 있다. 지난 사흘 동안 병석의 어머니를 먼저 가신 아버지 곁으로 떠나보냈다. 초겨울 찬 공기를 맡으며 밤하늘을 나서려니 어느새 고양이 두 마리가 티격태격하며 따라나선다. / 선돌 최 헌(시티팜뉴스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