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유한하기에 아름다운 것일까.

칼럼ㆍ기획

삶은 유한하기에 아름다운 것일까.

입춘을 지나 설날을 맞아

시티팜뉴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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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의 시작인 입춘이 지나고 설날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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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포근해진 공기가 대지에 가득하다. 얼어붙은 땅속으로 벌써 봄 내음이 전해질 것 같다. 머지않아 언 강물이 녹는 우수와 겨울잠에서 개구리들이 깨어날 경칩이 찾아올 것이다가끔씩 내리는 겨울비가 얼어붙은 텃밭을 달래는 것을 보며, 스산했던 겨울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것을 느낀다. 어떤 꽃은 사계절을 마치면 사라지지만, 어떤 꽃은 뿌리가 남아 해마다 봄이면 다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겨우내 얼어붙은 매화나무 가지 사이로 볼그레한 움이 트고 있다.

 

겨울비가 사람들의 마음을 녹아내린 탓일까. 멀리서 안부를 묻는 전화가 걸려오고 뜻밖의 발걸음들이 겨우내 움추렸던 농부의 마음을 적신다. 멀리서 찾아온 귀한 손님을 맞는 것은 시골 생활의 즐거움이다. 햇살 따스한 창가에서 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으면 창밖의 나무들이 시샘하듯 쳐다본다.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는 그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이 부러울 것이다. 우뚝 선 외로움이 힘겨워 강가의 갈대처럼 서로 몸 비비며 살고 싶어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생채기가 나기 쉽다. 젊은 시절 순수하고 다정했던 관계들이 어느새 부담이 되고, 술자리의 가벼운 농담도 쉽게 상처로 남는다. 나이가 들수록 나약해지는 것일까.

 

나이가 들면 세상사에 관대해질 것 같지만 오히려 고목처럼 딱딱하게 굳어지기 쉽다. 관성에 물들어 변화를 외면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움켜진 생각을 부여잡고 동굴 밖 세상을 원망과 분노의 시선으로 노려보며 자위하려 한다. 알 수 없는 삶이기에 인간은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노년의 오만과 독선은 부끄러움이다. 종착역이 다가오지만 자신의 짐을 챙기지도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칭얼댈 수는 없다. 손 끝하나 건드릴 수 없도록 두터운 외투를 걸치고 어둔 거리를 서성이지만 젊은 봄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인생은 유한하기에 아름다운 법이다.

 

비록 애증이 교차하고 상처를 나눌지라도 사람은 더불어 살며 성장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스승이고 관계는 영혼의 양식이다. 그러나 한참 사회생활을 하던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서 거의 관계들을 조금씩 정리하는 것이 순리다. 직장인으로 사업 파트너로 다양한 인맥을 쌓으며 사회생활을 해왔지만 은퇴를 하고 나이가 들면 치열한 현장을 떠나야하는 법이다. 이미 게임은 끝났고 관중은 떠났다. 아쉬움이나 미련이 남겠지만 순리를 거역할 수는 없다. 경기장 주위를 배회하기보다 집착을 버려야 할 때이다. 높다랗게 성벽을 쌓아두고, 두려움의 화살을 피해 자신의 방에 웅크린 채 세월을 보낼 수는 없다.

 

나이가 들면 혼자 사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한다. 나무들은 뿌리로, 가지로, 잎사귀로 홀로 의연히 생명을 유지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햇살이 내려앉기를 기다릴 뿐이다. 풀꽃들은 씨앗이 뿌려진 자리에 아무런 불평없이 꽃들을 피워내며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봄이 다시 찾아올 것을 믿는다. 빈들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가에 홀로 우두커니 서서 묵언 수행중인 소나무 위로 석양이 붉게 불타오르고 있다. /선돌 최헌(시티팜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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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석송
사람이 스승이고 관계가 영혼의 양식이다.  공감 가는 말입니다.

  치열한 사회생활을 떠나 이제 황금의 노년 초입이니 서로를 살리는 아름다운 관계를 양식 삼아 우리들의 영혼이 무럭무럭 성장하기를 고대합니다.
風竹軒
선돌님의 글은 참 신기한 마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수류화개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내용에 그냥 빠져듭니다.
흙은 순수자체라 생각합니다.
콩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나고...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PNSH
글이 마음 깊이 다가오는게 한편의 긴 시를 읽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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