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굴개굴 왼발
개굴개굴 오른발
시인이 사는 산골 마을 저수지. 비라도 내리면 저수지 둑길 가는 길은 개구리가 개굴개굴 떼창이다. 개구리는 울면 한꺼번에 울고 그치면 한꺼번에 뚝 그친다.
둑길 가는 길은
개굴개굴 개굴길
아무도 안 보지 싶어서
개굴개굴 왼발
개굴개굴 오른발
무릎 번갈아 구부리며 걷는 길
개굴개굴 개구리
한순간 뚝 그쳐도
개굴개굴 왼발
개굴개굴 오른발
번갈아 구부리며 걷는 길
구부리지 않으면
내가 아닌 것 같은 길
- 동길산 시 ‘개굴개굴’
산골의 저녁은 좀 이르다. 다섯 시에서 여섯 시 사이다. 저녁을 먹고 어둑해진다 싶으면 산책에 나선다. 집에서 저수지 둑길까지 다녀온다. 십오 분 거리다. 둑길까지는 논. 비라도 부슬부슬 내리면 논 개구리가 개굴개굴 떼창을 한다. 비를 맞고서 우는지 빗소리 듣고서 우는지 그건 몰라도 울면 한꺼번에 운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개구리가 울면 거기에 보조를 맞춘다. 개굴개굴 선창에 왼쪽 무릎을 구부리고 개굴개굴 후창에 오른쪽 무릎을 구부린다. 물론 아무도 없을 때 이야기다. 사람이 보이거나 자동차 기척이 들리면 구부리는 동작을 멈춘다. 어른이 하는 행동으로선 쑥스러운 까닭이다. 둑길 끝까지 걸어도 보이는 사람 아무도 없고 지나는 자동차도 별로 없기는 하다.
느낌은 시원하다. 꺾기라도 하듯 무릎 관절을 툭 구부렸다가 펴면 우선은 시원한 느낌을 준다. 잘 안 하는 동작을 해서인지 관절이 유연해지는 기분이랄까. 성장기에 이렇게 걸었으면 지금보다 일이 센티는 컸을 텐데, 실없는 생각도 든다. 이 동작은 중독성이 있어서 개구리가 떼창을 그쳐도 한동안은 반복한다. 개굴개굴 왼발, 개굴개굴 오른발.
신기는 하다. 눈이 밝은 걸까, 귀가 밝은 걸까. 개구리는 울면 한꺼번에 울고 그치면 한꺼번에 그친다. 잠잠하다가도 울기 시작하면 온 논에서 떼창하고 그러다가 한순간 뚝 그친다. 십오 분 걷는 동안 떼창하고 그치기를 두세 번은 반복한다. 나도 두세 번은 반복한다. 떼창 그쳐도 한동안은 그대로 하다가 평소 걸음으로 돌아가고 다시 떼창하면 또 구부리고 펴며 걷는다.
신기도 하고 궁금도 하다. 언젠가 시에 썼지만 다 울 때 혼자서 안 우는 개구리는 없을까. 다 그칠 때 혼자서 우는 개구리는 왜 없을까. 혼자 안 우는 개구리가 있을 법도 한데 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알 수가 없고 혼자 우는 개구리가 있을 법도 한데 울음을 그치면 한꺼번에 뚝 그친다. 그치고 싶어도 그쳐지지 않아 옆구리 치며 꺼이꺼이 우는 개구리, 하나도 없다.
그러든 말든 나는 나대로 걷는다. 개굴개굴 왼발, 개굴개굴 오른발. 구부리며 나를 낮추었다가 펴며 본래의 나로 돌아간다. 낮추었다가 돌아갔다가 낮추었다가 돌아갔다가 십오 분 거리가 수리수리마수리다. 개구리는 개구리대로 울고 나는 나대로 걷는 산골의 저녁. 마술사가 매직을 부려 하얀 새로 둔갑한 머플러가 둑길 저쪽으로 펄럭펄럭 날아간다.
동길산
시인. 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와 대학을 부산에서 나왔다.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했으며 <꽃이 지면 꽃만 슬프랴> 등의 시집과 <어렴풋, 당신> 등의 산문집을 냈다. 1992년 경남 고성 대가면 산골로 귀촌해 처음 10년은 한 달 내내, 그다음 10년은 한 달의 절반, 지금은 한 달에 열흘을 산골에서 지낸다. 2020년 김민부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