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길산 시인의 시가 있는 산골 30년❻새는 왜 우는가
사람이 보는 것보다 더 높은 데서
사람이 보는 것보다 더 먼 데를
새벽과 저녁
새는 운다
어둠과 밝음
밝음과 어둠
그 경계에서 새는 운다
얼마나 울어 대는지
우는 소리에 콕콕콕 쪼여
경계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달랑댄다
나뭇가지 또는 새 둥지
사람이 보는 것보다 더 높은 데서 보고
사람이 보는 것보다 더 먼 데를 보는 새
새 우는 소리가
어둠과 밝음
밝음과 어둠
그 경계에 스민다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경계인 사람에 스민다
촘촘하고 끈끈한 거미줄을 지나서
새소리가 지상에 닿는
이 세상 모든 새벽
이 세상 모든 경계
새는 왜 우는가
- 동길산 시 ‘새는 왜 우는가’
산골 삼십 년. 처음과 달리 새소리에 멀어졌다. 새가 멀어지거나 새소리가 들리지 않거나 그런 건 아니다. 창문을 열면 방문을 열면 여전히 바로 앞에 새가 보이고 바로 앞에서 새소리가 들린다. 새도 새소리도 그대론데 달라진 건 오로지 나. 내가 달라졌다. 삼십 년 전의 내가 아니다.
산골 삼십 년. 내가 봐도 나는 많이 달라졌다. 산골 초보 어리숙하던 그때의 내가 아니라 ‘나는 자연인이다’ 원조를 자처하며 알은체는 혼자서 다 한다. 집에 대고도 그랬다. 어리숙하던 그때는 이나마도 어디냐며 촌집에 감지덕지했다. 그러다 야금야금 손을 댔다. 야금야금 손질했다. 그러면서 집은 처음에서 멀어졌고 새소리에서 멀어졌다.
집은 초가삼간. 방 두 칸에 부엌 한 칸, 그리고 마루가 다였다. 겨울이면 웃풍이 셌다. 집 사고 처음 이삼 년은 감지덕지 사느라 불평불만 없이 지냈다. 그러다 꾀가 생겼다. 여름이면 마루 전체를 모기장으로 둘렀고 겨울이면 이중 비닐로 둘렀다. 살 만했다. 바람이 센 날은 비닐이 펄럭이고 웃풍은 여전했지만 내심 쾌재였다.
그렇게 몇 년. 칠팔 년은 되겠다. 욕심이 났다. 바깥 풍경이 성에 안 찼다. 두꺼운 비닐에 가려서 뿌옇게 보였다. 어떤 해는 모기장 걷는 게 귀찮아서 그 위에 비닐을 쳤다. 더 뿌옇게 보였다. 여기저기 연재하면서 돈에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마루 전체에 통유리를 달았다. 어릴 때부터 통유리 집은 로망이었다. 하는 김에 방마다 창문도 이중 유리로 바꿨다.
별유천지비인간이었다. 모기장을 치고 뜯거나 비닐을 치고 뜯거나 하는 일을 반복하지 않아도 되었다. 바깥세상도 선명하게 보였다. 마당을 폴짝폴짝 다니다가 폴짝폴짝 짝짓는 겨울과 봄 사이 개구리가 다 보였고 안 떨어지려고 안 떨어지려고 용을 쓰다가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과 겨울 사이 마당 감나무 이파리가 다 보였다.
딱 하나. 딱 하나가 문제였다. 새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통유리 탓이었다. 이중 통유리가 새소리를 이중으로 막았다. 마루 양쪽 샛문을 열거나 방의 창문을 열어야 온전하게 새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환절기. 공기가 차서 아침저녁 쌀쌀한 것도 있지만 새소리가 막혀서도 쌀쌀하다. 새소리에 새벽잠 잠깐잠깐 깨던 이중 비닐의 그때에서 너무 멀리 왔다.
시인의 집 마루에서 통유리 너머로 본 바깥 풍경. 풍경은 선명하게 보여도 두꺼운 유리에 막혀서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 게 흠이다. 사진=박정화 사진가
동길산
시인. 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와 대학을 부산에서 나왔다.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했으며 <꽃이 지면 꽃만 슬프랴> 등의 시집과 <어렴풋, 당신> 등의 산문집을 냈다. 1992년 경남 고성 대가면 산골로 귀촌해 처음 10년은 한 달 내내, 그다음 10년은 한 달의 절반, 지금은 한 달에 열흘을 산골에서 지낸다. 2020년 김민부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