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길산 시인의 시가 있는 산골 30년 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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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길산 시인의 시가 있는 산골 30년 ❽간

다 맞추고 살 수는 없는 거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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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맞추고 살 수는 없는 거라며 

펄펄 끓는 국물 연거푸 떠먹다가

 

 

입맛에 맞나 안 맞나

한 숟갈 또는 두 숟갈

대개는 고개를 끄덕이고 일부는 물린다

그러면서 맛의 간격을 줄이고 간을 맞춘다

입맛만 그럴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맛이란 게 있어서

한 걸음 또 한 걸음

대개는 다가가고 일부는 물러난다

국 간을 맞추다가

끝내 맞추지 못한

당신과 나의 간을 생각하는 저녁

사람 일이란 게

다 맞추고 살 수는 없는 거라며

펄펄 끓는 국물 연거푸 떠먹다가

지난주 이어 또 덴

입천장

               - 동길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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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중순 경북 구미에서 온 손님을 대접하려고 닭백숙 장작불을 지폈다불이 맑고 김이 맑다간도 맑으려나. 

 

무얼 먹나. 하루는 대개 두 끼. 아침과 점심이든 점심과 저녁이든 아침과 저녁이든 대개는 두 끼. 오늘은 아침과 저녁. 점심은 산책이 길어지면서 건너뛰었다. 한 끼 놓치면 평생 놓친다고 말은 하지만 하루 세 끼 붙들고 산다고 능사는 아니다.

 

밥 먹는 시간은 귀하다. 하루 스물네 시간 산골에서 밥때만큼 즐거운 때가 있을까. 이 귀하고 이 즐거운 시간을 아무렇게나 보내기가 아까워 이벤트를 벌이곤 한다. 젊을 때 한 몇 년간은 팔굽혀펴기 백 회를 하고서야 밥상을 차렸다. 안 그래도 두꺼운 가슴이 더 두꺼워지는 바람에 관뒀지만.

 

오늘 아침에 먹은 건 누룽지. 구수하고 잘 넘어가서 하루 한 끼 정도는 누룽지로 때운다. 간단해서 좋다. 누룽지 한 주먹 넣고 팔팔 끓이면 된다. 부식은 주식에 따라서 달라진다. 누룽지면 마른반찬을 차리고 밥이면 국을 끓인다. 꼭 그런 건 아니고 대체로 그런 편이다.

 

좀 부끄럽긴 하다. 산골 삼십 년 넘는데도 끓일 줄 아는 국은 김치찌개가 다다. 된장찌개도 몇 번 끓여 봤지만 이것 넣고 저것 넣고 하는 게 번거로워서 꺼린다. 김치찌개는 누룽지처럼 간단해서 좋다. 묵은지 넣고 참치나 돼지고기 듬뿍 넣고 팔팔 끓이면 끝이다.

 

김치찌개는 달인 수준이다. 냄새만 맡아도 끓는 소리만 들어도 맛이 보인다. 짠지 싱거운지 보이고 깊은지 얕은지 보인다. 가히 김치찌개 전문점 주방장이다. 간을 맞추지 못해 라면스프나 다시다를 털어 넣던 처음 몇 년을 돌아보면 그런 때가 있었나 싶다.

 

말은 그렇게 해도 아직은 멀다. 맛을 눈으로 식별해야 진정한 달인이련만 아직은 입으로 식별한다. 대개는 고개 끄덕이는 맛이 나지만 문제는 내 급한 성깔머리다. 후후 불어서 천천히 맛보면 좋겠는데 그게 어렵다. 그럴 수 있겠단 생각은 든다. 하루는 두 끼. 배가 고파서라도 연거푸 떠먹게 되니.


동길산

시인. 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와 대학을 부산에서 나왔다.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했으며 <꽃이 지면 꽃만 슬프랴> 등의 시집과 <어렴풋, 당신> 등의 산문집을 냈다. 1992년 경남 고성 대가면 산골로 귀촌해 처음 10년은 한 달 내내, 그다음 10년은 한 달의 절반, 지금은 한 달에 열흘을 산골에서 지낸다. 2020년 김민부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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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gs11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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