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길산 시인의 시가 있는 산골 30년❷거기

칼럼ㆍ기획

동길산 시인의 시가 있는 산골 30년❷거기

둑 너머 밀려간 물은 어디에 닿나

시티팜뉴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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둑 너머 밀려간 물은 어디에 닿나 

어디에 닿아서 마른 마음을 적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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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사는 산골 마을의 저수지 주변과 둑길에 깔린 안개둑길 안개는 고집이랄지 성깔이 있다저수지 한 방향에서만 몰려왔다가 

둑길 너머 한 방향으로만 몰려간다. 



나무에서 멀어진 잎은 어디에 닿나

새에서 멀어진 소리는 어디에 닿나

보이는 데도 아니고

보이지 않는 데도 아닌 거기

젖었다가 마른 손의 물기는 어디로 가나

젖었다가 마른 마음의 물기는 어디로 가나

아예 모르지는 않지만

안다고도 할 수 없는 거기

가 본 곳보다 가 보지 않은 곳은 늘 많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늘 많아도

누군들 가 본 곳만 갔으랴

누군들 보이는 것만 봤으랴

바람 세차게 불다가 누그러진 둑길

둑 너머로 밀려간 바람은 어디에 닿나

어디에 닿아서

마음의 젖은 물기를 말리나

둑 너머로 밀려간 물은 어디에 닿나

어디에 닿아서

젖었다가 마른 마음을 다시 적시나

                     

                      - 동길산 시 거기

 

안개다. 안개 너머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둑길 걸으면서 저리 자욱한 안개를 접한 건 손가락 꼽을 정도다. 은근히 빨려드는 느낌이 든다. 이대로 빨려들어야 하나, 생각을 바꿔 먹고 돌아서야 하나. 어중간하게 서서는 생각이 많아진다. 안 그래도 컴컴한 밤. 헛발이라도 디뎌서 둑길 아래로 굴러떨어지면 어쩌나.

 

저 앞에서 차가 온다. 안개에 가려 무슨 차인지 알 수는 없고 헤드라이트 불빛만 뿌옇게 번져서 나를 쿡쿡 찌른다. 나도 차가 제대로 안 보이니 차는 내가 제대로 보이려나. 둑길 가드레일에 바짝 붙어서 걸어도 불안감이 엄습한다. 야광 띠를 상체에 둘러매서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못 봐도 내가 맨 띠는 보이겠지.

 

둑길 안개는 가볍다. 가볍기 그지없다. 무게도 가볍겠지만 성정이 가볍다. 촐싹댄달까. 금세 자욱했다가 금세 물러나고 금세 물러났다가 금세 자욱하다. 그런데도 어울리지 않게 한 고집 하고 한 성깔 한다. 저수지에서 몰려왔다가 둑길 너머로 몰려간다. 오로지 저수지 한 방향, 둑길 너머 한 방향이다.

 

몰려왔다가 몰려가는 것들. 가까이 올수록 멀리 가더라는 경험칙이 누적되면서 나는 보호막이 두툼해졌다. 나를 가운데 두고 가드레일로 원을 쳤다. 가드레일이 나를 보호하고 방어할 거라 굳게 믿으며. 그러면서 나는 소심해졌고 자잘해졌다. 보호막이 두툼해질수록 점점 안쪽으로 들어갔고 점점 어두워졌다.

 

빵빵. 차가 가까이 다가오면서 내뱉는 경적이 짧고 뾰족하다. 그러면 그렇지. 차 불빛이 보이듯 야광 띠가 보였으리라. 차는 트럭. 내가 사는 마을에서 둑길을 지나면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한 갈래는 갈래 종생으로 불리는 끝 마을이고 한 갈래는 내갈, 외갈로 불리는 갈천리다. 종생도 산골이고 내갈도 산골이라 트럭이 자주 드나든다.

 

어실. 내가 사는 마을이다. 고기 어, 집 실을 쓴다. 갈천리 내갈 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산골 마을이다. 내가 사는 집은 어실 가장 뒤쪽에다 가장 위쪽. 마루에 앉으면 보이는 게 죄다 눈 아래다. 마을이 눈 아래고 마을 너머 저수지가 눈 아래고 저수지 너머 종생마을 가는 길이 눈 아래다. 자기들보다 위에 자리잡은 내가 눈꼴시면 안개를 끌어들여 퍼뜨린다. 퍼뜨리고선 안개 안쪽에다 마을을 숨기고 저수지를 숨기고 길을 숨긴다. 어실에선 다들 한 고집 하고 한 성깔 한다.


 

동길산 

 

시인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와 대학을 부산에서 나왔다.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했으며 <꽃이 지면 꽃만 슬프랴등의 시집과 <어렴풋당신등의 산문집을 냈다. 1992년 경남 고성 대가면 산골로 귀촌해 처음 10년은 한 달 내내그다음 10년은 한 달의 절반지금은 한 달에 열흘을 산골에서 지낸다. 2020년 김민부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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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수선화
우리네 삶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시인의 마음이 느껴져 잠시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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