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길산 시인의 시가 있는 산골 30년 ❹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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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길산 시인의 시가 있는 산골 30년 ❹눈빛

보이든 보이지 않든 누군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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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든 보이지 않든 

누군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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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길산 시인의 산골집 마당마당 감나무는 늘 반쪽만 보인다다른 반쪽을 보려면 반대편으로 돌아가야 한다모든 나무가 그렇다반쪽만 내보인다. 반쪽만 봤을 뿐인데도 나무 하나를 온전히 봤다고 여기는 건 순전히 착시다. 


빛나는 모든 것은

자기만의 눈이 있다

가령,

나무를 보는 눈

사람을 보는 눈

그런 눈으로 보기에

나무는 빛을 내지 않아도 빛나고

사람은 빛을 내지 않아도 빛난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누군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빛

그런 눈빛이 있기에

나는 여기서 빛나고

당신은 거기서 빛난다

 

   - 동길산 시 눈빛

 

 

나무는 그렇다. 보면 볼수록 눈에 들어온다. 큰 나무는 큰 나무대로 작은 나무는 작은 나무대로 진심을 다해서 자기를 내보인다. 굽으면 굽은 대로 곧으면 곧은 대로 최선을 다해서 자기를 내보인다. 이 세상 모든 나무가 그렇다. 진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한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마당 감나무는 늘 반쪽이다. 산골 산 지가 만 31년이니 마루에서 감나무 봐 온 지도 만 31. 감나무를 온전히 본 날은 단 하루도 없다. 나무는 늘 반쪽을 내보인다. 나머지 반쪽을 보려면 나무 뒤로 돌아가야 한다. 뒤로 돌아가서 봐야지 하다가도 대개는 다음으로 미루기 일쑤다. 그 세월이 만 31년이다.

 

보이는 반쪽과 보이지 않는 반쪽. 보이든 보이지 않든 감나무는 진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한다. 그러면서 같이 간다. 보이는 쪽에 껍질이 갈라지면 보이지 않는 쪽도 껍질이 갈라지고 보이는 쪽에 이끼가 끼면 보이지 않는 쪽도 낀다. 같이 갈라지고 같이 끼면서 보면 볼수록 눈에 들어온다.

 

마당 감나무만 그러랴. 모든 나무가 반쪽만 내보인다. 반쪽만 봤을 뿐인데도 나무 하나를 온전히 봤다고 여기는 건 순전히 착시다. 나도 마찬가지다. 건성건성 보면서 지나치고도 온전히 봤다고 여긴 어수룩한 날들. 나무에만 그랬으랴. 온전히 봤다고, 온전히 안다고 여긴 당신에겐 그러지 않았으랴.

 

나무와 당신. 나무를 보는 만큼이나 당신을 본다. 나무와 나 사이에 거리를 두고 당신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둔다. 나무를 온전히 보려면 거리를 둬야 하고 당신을 온전히 보려면 거리를 둬야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순전히 착시다. 착시고 착각이다. 거리를 두면 둘수록 나무에서 멀어지고 당신에서 멀어진다.

 

감나무 뒤로 돌아간다. 뒤로 돌아가서 갈라진 껍질을 쓰다듬고 이끼를 쓰다듬는다. 나무는 안다. 누군가는 자기를 본다는 걸. 대개는 건성건성 지나치지만 누군가는 뒤로 돌아가서도 본다는 걸. 그걸 알기에 나무는 보이는 반쪽도 보이지 않는 반쪽도 진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한다. 나무도 사람도.

 

 

동길산

시인. 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와 대학을 부산에서 나왔다.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했으며 <꽃이 지면 꽃만 슬프랴> 등의 시집과 <어렴풋, 당신> 등의 산문집을 냈다. 1992년 경남 고성 대가면 산골로 귀촌해 처음 10년은 한 달 내내, 그다음 10년은 한 달의 절반, 지금은 한 달에 열흘을 산골에서 지낸다. 2020년 김민부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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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dgs11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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