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길산 시인의 시가 있는 산골 30년 ❼사람의 일

칼럼ㆍ기획

동길산 시인의 시가 있는 산골 30년 ❼사람의 일

길게길게 하늘로 오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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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길게 하늘로 오르거나

짧게짧게 마을에 스미거나

 

 

산골의 초저녁

아직도 불을 때는 몇몇 집의 굴뚝에서

길고 하얀 연기가 난다

내일 저녁까지 하루는 갈 온기로

겨울 하늘을 데우려는 듯

연기는 닿을 수 있는 최고의 높이까지 가서는

긴 것도 버리고

하얀 것도 버리고

하늘의 한 부분이 된다

바람 심한 날의

짧게 짧게 끊기는 굴뚝 연기와 달리

오로지 한 방향

평온한 날의 연기

사람의 일은 연기와 같아서

도무지 종잡지 못한다지만

사람의 일이 어찌 그러기만 할까

닿을 수 있는 최고의 높이까지 가서

긴 것도 버리고

하얀 것도 버리고

마침내 하늘의 한 부분이 되는

사람의 일

    - 동길산 시 사람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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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집이나 될까. 사람 사는 집이. 길가 한 집, 옆집 한 집 두 집, 옆집 앞에 한 집 두 집, 그리고 내 집. 이렇게 해서 모두 여섯. 주인이 뜸하게 오는 집까지 합치면 일곱이다. 삼십 년 전도 이 정도였다. 할머니 혼자 사시던 길가 오두막은 헐렸고 빈집이던 길가 또 다른 집은 외지인이 들어와 살고 하면서 예닐곱을 유지한다.

 

지붕이 빨간 집은 아쉽다. 집도 깔끔하고 자리도 잘 잡았는데 사오 년 전부터 빈집이다. 몇 년 더 됐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사 올 때는 부부가 살았다. 이사 온 지 몇 년 안 돼서 바깥분이 위암에 걸려 사별했다. 아주머니가 참 후덕했다. 수박 쪼개 먹자고 불렀고 고추장 담았다며 나눴다. 우편함 고지서를 모아뒀다가 나에게 묻기도 했다. 한글을 몰랐다.

 

빨간 지붕은 보기에도 좋았다. 앞집이라 훤히 내려다보였다. 마루에서 보는 모든 풍경의 중심에 앞집이 있었고 빨간 지붕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사는 집 지붕도 지금은 녹색 아스팔트 싱글이지만 이사 와서 칠팔 년은 빨간 양철지붕이었다. 녹슨 데가 녹 안 슨 데보다 많았어도 보기는 좋았다.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저절로 빨개졌다.

 

앞집 빨간 지붕은 연기도 좋았다. 보일러도 있었지만 해 질 무렵이면 장작을 땠다. 아궁이 연기 모락모락 피는 굴뚝이 화분 같았다. 초겨울 이맘때 해는 오후 4시 무렵 앞산 자락에 달랑달랑 걸렸다. 달랑대는 해를 친친 감기라도 하려는 듯 연기는 하늘로 꾸역꾸역 올라가 거기서 만개했다.

 

연기는 기분파였다. 날씨에 따라 그때그때 달랐다. 기세 좋게 치솟는 연기가 있었고 바람에 떠밀리는 흐지부지 연기가 있었다. 길게길게 올라가는 연기가 있었고 짧게짧게 끊기는 연기가 있었다. 내 반대쪽으로 가는 연기가 있었고 내 있는 쪽으로 오는 연기가 있었다. 어떤 연기는 단정했고 어떤 연기는 격렬했다.

 

빨간 지붕을 수시로 내려다본다. 방에서 부엌으로 가면서 보고 부엌에서 방으로 가면서 본다. 몸과 마음이 불편한 고령의 아주머니가 부산 아들네 집으로 가면서 굴뚝 식은 지는 오래. 그래도 주말이면 아들딸이 놀러 오고 아들딸의 아들딸이 놀러 온다. 아들딸이 피우고 아들딸의 아들딸이 피운 연기 역시 그럴 것이다. 굴뚝 화분에서 피어올라 길게길게 하늘에 닿거나 짧게짧게 끊기면서 마을로 스며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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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사는 경남 고성의 산골 마을과 시인의 앞집 빨간 지붕빨간 지붕 굴뚝에서 핀 연기는 길게길게 하늘에 닿거나 짧게짧게 사람의 마을로 스며든다. 

 

동길산  

시인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와 대학을 부산에서 나왔다.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했으며 <꽃이 지면 꽃만 슬프랴등의 시집과 <어렴풋당신등의 산문집을 냈다. 1992년 경남 고성 대가면 산골로 귀촌해 처음 10년은 한 달 내내그다음 10년은 한 달의 절반지금은 한 달에 열흘을 산골에서 지낸다. 2020년 김민부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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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gs11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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