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새가 울면 마음이 동한 다른 새
둥그렇게 둥그렇게 다 따라서 울어
날이 밝기 직전에 맞춰서
새는 운다
맨 앞에서 나는 새가 있듯이
맨 처음 새가 울면
다음 새, 그다음 새 또는 동시에
새는 운다
새는
그냥 우는 것 같아도
그냥 우는 새는 없다
울어야 할 때 울고
서로 나누어서 운다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슬픔
새인들 왜 없겠느냐만
어느 새도
혼자서 울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한 새가 울면
다음 새, 그다음 새 또는 동시에
새는 운다
새 우는 소리에 맞춰서
날은 밝는다
- 동길산 시 ‘새는’
시인의 산골집 마당 감나무에 매단 새집. 새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 매단 새집이라서 들여다보는 새가 통 없다.
미안하긴 하다. 새는 조금조금 다 다른데 다 다른 이름을 모르는 나로선 그냥 새다. 변명은 말자. 낯선 새라서 그런 게 아니라 새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아서다.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듯 진심으로 새를 대하면 어찌 그 이름을 모르랴.
덜 미안해할 방법은 있다. 새에게 나를 보이지 않으면 된다. 이름을 모른다 한들 보이지 않는 나를 새가 나무라랴. 방에 있을 때 새소리가 들리면 가능하면 내다보지 않는다. 기척도 가급적 낮추고선 새 이름도 모르는 고약한 나를 방 안쪽에 숨긴다.
새는 언제 울까. 때를 정해 놓고 울까, 아무 때나 울까. 새도 감정이 있을 텐데 무턱대고 울진 않을 것이다. 기쁘거나 슬퍼서 울기도 하고 간밤 잠결에 봤던 별 하나에 마음이 스며들어 울기도 하리라. 그럴만한 사연이 있어서 어떤 새는 소리가 안으로 움츠리고 어떤 새는 밖으로 퍼지리라.
지금은 하루의 경계. 어둡다가 밝아진다. 새 우는 소리는 집 앞에서도 들리고 집 뒤에서도 들리지만 대개는 무심히 듣고 소홀히 듣는다. 우는 게 어찌 새뿐이랴. 새소리에 유독 집중할 때가 하루의 경계인 지금이다. 몇 번을 우나 반복해서 헤아리고 길게 우나 짧게 우나 줄자로 잰다.
새는 소리가 다 다르다. 비슷할 수는 있어도 소리가 같은 새는 없다.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며 보이든 보이지 않든 자기를 드러낸다. 때로는 안으로 스며드는 소리를 내고 때로는 밖으로 퍼지는 소리를 내며 언제라도 어디서라도 길게 우는 새는 길게 울고 짧게 우는 새는 짧게 운다.
가끔은 헷갈린다. 한 새가 울면 이름이 같은 새만 따라서 우는지, 이름이 다른 새도 따라서 우는지. 이름이 같은 새가 울기를 그치면 이름이 다른 새가 우는지. 이름은 다 달라도 크게 보면, 둥그렇게 보면 새는 다 같은 새. 한 새가 울면 마음이 동한 다른 새도 둥그렇게 둥그렇게 다 따라서 울 것 같기는 하다.
동길산
시인. 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와 대학을 부산에서 나왔다.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했으며 <꽃이 지면 꽃만 슬프랴> 등의 시집과 <어렴풋, 당신> 등의 산문집을 냈다. 1992년 경남 고성 대가면 산골로 귀촌해 처음 10년은 한 달 내내, 그다음 10년은 한 달의 절반, 지금은 한 달에 열흘을 산골에서 지낸다. 2020년 김민부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