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 나누는 계절,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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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 나누는 계절, 봄이다.

선 돌 소식 (1)

시티팜뉴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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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추 나누는 계절봄이다.


 아침이면 마당 한구석 틀밭에 심어둔 야채가 새벽이슬을 머금고 싱그러운 인사를 건넨다.

 덕분에 매일 상추와 쑥갓 등을 한 웅큼씩 따서 샐러드와 쌈 등으로 식탁을 차리는 호사를 누린다.


 두어 달 전인 4월 초에 인근 노포동 시장에 들러 상추를 비롯 당귀, 방풍, 치커리, 쑥갓, 방아 등의 모종을 조금씩 사서 일찌감치 밭에 심었었다. 행여 모자랄까 괜한 욕심이 나서 며칠 뒤에는 모듬 상추, 안동 적추면 상추 등 종류별로 다양한 상추 씨앗을 구해 별도로 틀밭 한 상자에 뿌리고, 남은 것은 가을 파종용으로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다.


 꽃샘 추위를 견디고 한달여가 지난 5월 중순 모종을 심은 틀밭에서 부터 채소들이 먹음직스럽게 자랐다. 씨앗을 뿌린 틀밭에서도 여린 싹들이 빼곡히 고개를 내밀어 일부는 솎아내 샐러드로 먹기 시작했다.

식사 때면 다채롭고 싱그러운 봄 향기가 그득한 이 맛이 해마다 채소 농사짓는 재미일 것이다.

 

 내 배가 부르니 여유가 생긴다. 오뉴월 햇살을 받으며 채소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고 있다.

 애당초 혼자 먹기에는 많은 양이었다.

 어쩌다 모임에 나갈 때면 비닐봉지에 종류별로 채소를 가득 담아 지인들에게 건넨다.

 

 ‘마트에서 산 것하고는 맛이 다르네

 ‘저번에 받은 것은 다 먹었는데 또 얻을 수 없나요

 봄철 채소장사(?) 재미가 솔솔하다. 사소하지만 나눌 수 있는 것이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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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년퇴직 하면 뭐하실 겁니까.’

 몇 년 전 다니던 직장 동료들이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묻곤 했다.

 ‘텃밭이나 가꾸고 조용히 지낼 겁니다

 직장에서의 경험을 살려 퇴직 후에도 계속해서 일하고 싶은 맘이 없지 않았지만,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마음 한편으로는 부족하더라도 경제활동에서 벗어난 노년을 내심 꿈꾸었다.


 40년 넘는 사회생활이 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남겨진 삶은 자유롭게 지내고 싶었다.

 직장과 사회생활이 주는 보람과 즐거움이 컸지만, 이제 스스로를 찾아가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오래전 부산 근교에 마련해 둔 자그마한 텃밭도 한몫했다. 

 퇴직을 하고 짬을 내 평생교육원에서 도시농업 강의를 듣고 도시농업관리사 자격증도 땄다.


 하지만 도심의 집을 떠나 부산 변두리 시골에서 홀로 지내는 시간은 평화로웠지만 외롭기도 하다.

 자그마하지만 텃밭 농사는 그런 내게, 도시와 또 그 도시들이 맺어 준 오랜 인연들과 멀어져가는 시골생활에서 벗어나 다시 사람들을 찾아가는 작은 힘이 되고 있다


 은퇴한 50, 60대들중 상당수가 경제적인 어려움과 사회적 고립 등으로 걱정스러운 노후를 맞고 있다고 한다

 급변하는 시대에 휩쓸려 문득 불청객처럼 다가온 노년. 저마다 처음 겪는 노후 생활이 주는 무거운 짐의 내용이야 다르겠지만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임은 틀림없다.

 

 6월 중순이지만 여전히 채소들이 무성한 틀밭 한켠에는 머지않아 고추도, 오이도, 가지도 주렁주렁 매달릴 것이다이제 복잡한 마음자리를 털고 일어나 잡초를 뽑으러 나가야겠다.


 안주(安住)하려는 내 마음 한켠에서 자라나, 그대와 나를 가로막고 있는 무수한 잡초들을 뽑아내면 잊었던 미소를 되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입안 가득 번지는 봄 향기가 시름에 잠긴 누군가에게 잃어버린 꿈과 희망을 되찾아 주길 기원하며 풍성한 야채 한 보따리를 나누어 먹고 싶은 계절이다.

                                                   /선 돌  최 헌 (시티팜뉴스 발행인)


 - 부산시 기자협회장, 청소년신문인 우리들신문 발행인을 역임하고 부산경제진흥원에서 본부장으로 정년퇴임한 뒤 도시농업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부산 기장군 철마면 선돌 마을에서 텃밭농사를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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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개금88
상추가 참 먹음직스러워 보입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누군가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인생이 조금 덜 외로운 것 같습니다. 선돌소식 또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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