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나 오이 등의 모종을 심은 뒤 어느 정도 자라면 곁순을 제거해야 한다.
처음에는 몰랐다. 가지가 많이 생기면 자연히 열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전 텃밭에 놀러 온 친구가 고추가 어느 정도 자라 방아다리가 생기면 방아다리 밑의 곁순은 모두 제거해야 원줄기가 제대로 자라고 영양분이 열매로 갈 수 있다고 했다. 이후로 곁순 제거가 고추나 오이 같은 작물 재배의 기본 상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처음에는 곁순 제거가 쉽지만은 않았다.
곁순과 원줄기를 구분하지 못해 원줄기를 잘라내기도 하고, 곁순을 너무 일찍 제거해 광합성 작용을 못해 뿌리가 제대로 자라지 못할 때도 있었다. 유튜브나 책들을 보면 오이나 호박 등은 수확하려는 열매 위주의 가지만 키우고 나머지는 모두 제거해야 하고, 토마토나 콩 등은 줄기로 양분이 가지 않고 열매로 갈 수 있도록 아예 원줄기 순지르기를 하라고 한다.
고추의 첫 꽃과 열매는 줄기 성장과 다음 열매를 위해 따주어야 한다는 것을 안 것은 최근이다.
작물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많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곁순이나 가지 등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식물이 더욱 강해지고 싱싱한 결실을 위해서는 여린 순들을 잘라내는 아픔과 상처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텃밭에 앉아 가지 사이로 수줍게 고개를 내민 여린 곁순을 제거할 때마다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우리네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사소한 것들에 얽매여 구체적 결실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삶의 결실을 얻기 위해서는 곁순이 가지를 뻗어나가지 않도록 일찌감치 제거해야 한다지만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인가.
수시로 부질없는 망상과 헛된 욕망, 무수한 잡념들이 곁순으로 생겨나 곁가지로 자라난다.
이기심과 욕망에 이끌려, 잡다한 지식과 부질없는 관계에 얽매여 미로 속을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원줄기와 곁순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성장을 가로막는 곁순을 원줄기인 양 끌어안고 지낼 때도 있다.
다재다능했던 친구가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하고 일찌감치 시들어 버리거나, 다정도 병이라 했건만 정이 넘쳐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사람들의 안타까움이 곁순을 따는 손끝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애초에 곁순을 제거했다면, 깨달았을 것들을 수확철이 되어 뒤늦게 후회하기도 한다.
미련과 집착으로 변변한 수확물 하나 건져 갈 것 없는 인생살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올해는 일찌감치 곁순을 털어낸 덕에 싱싱하게 자란 풋고추가 초여름 밥상에 가득하다.
장마철 비바람 속에서도 굵고 야무진 줄기를 따라 당당하게 자라난 고추들이 대견하기만 하다.
/ 선돌 최 헌 (시티팜 뉴스 발행인)
- 부산시 기자협회장, 청소년신문인 우리들신문 발행인을 역임하고 부산경제진흥원에서 본부장으로 정년퇴임한 뒤 도시농업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부산 기장군 철마면 선돌 마을에서 텃밭농사를 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