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봄 날은 오고 간다.
봄철에는 만물이 분주하다. 잡초들 사이로 알에서 깨어난 온갖 풀벌레들이 바삐 움직이고, 땅속에서 나온 개미들은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인다. 새들은 새끼들에게 줄 먹이를 옮기느라 지칠 줄을 모른다. 사냥감을 노리며 마당을 오가는 고양이를 지켜보다 비가 그친 날에는 머위와 곰취들 사이로 무성히 자란 잡초를 뽑고, 키를 훌쩍 넘게 자란 사철나무 울타리도 정리한다. 잡초를 모아 둔 거름통에서도 지렁이와 미생물들이 열심히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다. 봄기운에 몰려나와 모두 제각기 해야 할 일들을 하는 오월이다.
잦은 봄비로 새로 심은 꽃들이 포근해진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좁은 마당을 화사하게 밝히는 어린 꽃들이 반가워 자주 마당을 오가게 된다. 4월 중순 심어 둔 상추와 치커리 등 잎채소들은 어느새 울긋불긋 풍성하게 자라나 입맛을 돋운다. 여느 해처럼 고추와 가지, 방울토마토와 오이 모종들도 빈 텃밭에 심고 지주대를 세워둔다. 올해는 욕심내지 않고 두 식구 먹을 만큼만 충분히 간격을 벌려 심었다. 한 달쯤 지나면 지주대만큼 키가 훌쩍 자라날 것이다. 어디서 싹을 틔워 찾아온 모종들인지 알 수 없지만, 어설픈 내 손길을 기다리는 새로운 인연들이 고맙기만 하다.
지난 5월3일부터 나흘간의 연휴기간 동안 부산시민공원에서는 ‘제4회 부산 봄꽃 전시회’가 열렸다. 예쁜 꽃들로 만든 아기자기한 조형물들을 배경으로 봄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플로리스트들의 정성어린 손길로 단장한 봄꽃들이 화려한 화훼조형물로 다시 태어나 사람들을 반겼다. 수백년된 분재는 시간을 거슬러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말린 꽃잎들이 액자 속에 환생해 영생을 꿈꾸고 있다. 오월이 가면 사라져 버릴 꽃들의 축제에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설레고 들뜬 발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화양연화(花樣年華)라고 했던가. 아름다운 계절이다.
5월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 산소에 마당에 핀 하얀 찔레꽃 한 다발을 두고 내려오는 길에 부슬부슬 봄비가 내린다. 부모님이 계신 그곳에도 꽃이 피고 비가 내릴까. ‘큰애야, 퇴근길에 막걸리 한 통 사오너라’며 봄비 내리던 날은 파전에 막걸리 한잔을 드시고 먼저 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했던 어머니였다. 그곳에서는 이제 두 분이 오순도순 정답게 지내실까. 꿈같던 이승의 삶을 두고 떠난 자들이 모여 있는 공원묘지 무덤들 사이로 비에 젖은 풀꽃들이 슬픔마저 잊은 듯 정겹기만 하다.
꽃 피는 오월이라 자녀들의 혼사를 알리는 소식이 잦다. 꽃이 피고 지듯 어떤 이는 삶을 마감하고, 젊은이들은 새 가정을 꾸린다. 오직 사랑만이 길이라면 결혼은 그 사랑의 출발점일 것이다. 부부로 만나 자녀들 낳고 가정을 꾸리는 그 평범한 삶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초저녁 아카시아 향이 진하게 번지는 봄길을 거닐면 하얀 개망초들이 옹기종기 석양빛에 물들며 봄날을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렇게 봄 날은 오고 간다.
/선돌 최헌 (시티팜뉴스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