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과 저쪽이 서로 들여다보고 이해하며 소통하는 이름. 창구멍
장마철이라고는 하지만 연일 대책 없이 내리는 빗줄기에 많은 사람의 심려가 깊어지는 요즘입니다.
장마철에는 많은 비로 인하여 산이나 계곡은 물론이고 저수지나 평평한 들녘까지도 평상시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고, 식물도 많은 비에 잎이나 줄기 등에 수분을 많이 머금고 있어서 이 시기에 야생초를 채취하여 차를 만드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면 새로운 차를 만들기보다는 이미 만들어 놓은 차가 많은 습기를 머금거나 변질되지 않도록 신경 써 보관하고 관리하는 게 좋습니다.
'이불, 솜옷, 겹옷, 대님, 버선 따위를 지을 때 안과 밖을 뒤집어 빼내기 위하여 꿰매지 않은 부분'- '창구멍'이라는 말로 사전을 찾아보면 이와 같은 말로 뜻이 풀이되어 있습니다.
다시 풀어보면 창구멍이라는 말은 두 장의 천을 서로 맞대어서 무엇인가를 만들 때 천과 천의 겉면끼리 마주 보게 꿰맨 다음 마무리 단계에서 그 천의 겉면이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면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천을 뒤집어 빼내기 위한 구멍이라는 말인데요, 천 두 겹을 덧대어 찻잔 받침 등을 만들거나 기타 작은 소품 등을 만들 때 꼭 필요한 바느질 기법이지요.
일정한 탄력이 생길 수 있도록 적당한 두께의 솜을 깔고 그 위에 찻잔 받침의 밑면이 되는 천과 찻잔 받침의 윗면이 되는 천을 바깥 부분이 서로 마주 보도록 포갠 다음 솜, 밑면, 겉면의 순서가 되도록 겹쳐 놓고 바느질하여 꿰매어 주는데요, 그렇게 서로 꿰매어 주다가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서는 천의 겉면이 작품의 바깥쪽 면이 되도록 한꺼번에 안과 밖을 뒤집어 주어야만 하는데, 이때 안과 밖을 서로 뒤집을 수 있도록 꿰매지 않고 남겨 놓은 작은 구멍이 창구멍입니다.
일부러 남겨둔 이 작은 창구멍으로 손가락이나 다른 도구를 집어넣어 안쪽에 있던 천을 바깥쪽으로 꺼내어 안과 밖의 위치를 서로 바꾸어 주는데요, 만일 창구멍을 남겨두지 않은 체 바느질로 천의 모든 면을 다 꿰매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미 바느질하여 완성된 작품에 다시 구멍을 내어 수정하기 전까지는 안과 밖이 뒤바뀐 모습만을 볼 수 있을 뿐 제대로 된 모양은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애초에 어떤 의미에서 천과 천 사이의 이 작은 구멍에 창구멍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얼마나 근사한 이름인지요. 이쪽과 저쪽을 서로 구분하여 나누고 경계하는 이름이 아닌 이쪽과 저쪽이 서로 들여다보고 이해하며 소통하는 이름.
세상을 살다 보면 너무도 익숙해져 버려서 안과 밖이 뒤바뀐 줄도 모르고 지금의 내가 나의 전부인 양 착각하며 살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이런저런 큰 피해를 겪고, 본의 아니게 타인에게 숱한 상처를 준 이후에야 비로소 내가 알고 있는 어떤 것들이 사실은 틀린 것이었음을 인정하게 될 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크고 작은 아픔들은 수습할 길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수시로 들여다보며 안부를 묻고, 안과 밖을 뒤집어 확인해 보면서 스스로 자신을 돌이켜 볼 수도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이런 작은 창구멍 하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철 따라 산과 들에서 야생초를 채취하고 그것을 가공하여 사람이 마실 수 있도록 차를 만들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마시는 일상의 그 작은 순간은 어쩌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사람과 자연 사이를 서로 통하게 이어 주는 작은 통로, 창구멍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용성
1968년 전북 대야 출생.
쓴 책으로는 '야생초 차 –산과 들을 마신다'가 있다.
철 따라 야생초 차를 만들고 바느질로 마음공부를 하며 현재는 충남 서산에서 전원카페 ‘흰 당나귀’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