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고뿔까지 겪고 나니 매사가 시들하다. 아침 햇살에 화사하게 빛나던 꽃들도 사라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보이는 잿빛 하늘이 우울한 일상을 보탠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며칠째 시골집 마당을 하릴없이 서성대며 애꿎은 휴대폰만 만지작거린다. ‘산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라고 정호승 시인이 ‘수선화에게’ 말했지만, 인고의 계절 겨울을 맞는다는 것이 새삼 두렵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이리저리 넝쿨처럼 맺었던 관계들이 마른 풀잎처럼 흐트러지고, 한여름 나뭇잎처럼 무성했던 사념들은 차가운 대지를 뒹굴고 있다. 계절을 따라 열정은 식어가고 희망은 희미해진다.
올해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한여름 고추와 깻잎으로 무성했던 텃밭에 심어둔 배추는 검푸르게 얼고 녹기를 반복해 지난주 가족들을 불러 김장을 마쳤다. 차일피일 김장을 미루면서 12월 들어 밤에는 비닐로 덮어두고 아침마다 속이 찼는지 살펴본 탓인지 속이 제법 영글었다. 함께 심어 둔 토종 무는 서리가 내리기 전인 한달전쯤 일찌감치 뽑았고, 그늘에 매달아 둔 무청은 벌써 바짝 말라버렸다.
지난해에는 함암배추 모종을 구해 심었으나 올해는 황금배추 모종을 주로 심었다. 김장 배추 종자 종류가 궁금해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불암3호, 휘파람골드 등 무려 16종이나 된다. 이중 고기능성 배추인 황금배추는 항암 및 노화 예방 효과가 있는 라이코펜 함량이 토마토의 10배에 이른다고 한다. ‘암탁’이란 품종인 항암배추는 항암효과가 있는 베타카로틴이 일반배추보다 33.5배나 많고, 항암효과가 있는 화학물질인 인돌카페인을 함유한 배추로 배추와 순무를 교배해 만든 품종이라고 한다. 그런 탓인지 속이 황금빛으로 물든 김장 김치 맛이 구수하고 달콤하다.
가을날 김장배추 모종을 구해 심으며 함께 씨 뿌렸던 상추는 인터넷을 보고 구입한 조립식 비닐하우스 덕분인지 찬 날씨에도 용케 버텨내며 겨울 식탁을 푸르게 하고 있다.
그러나 마당의 꽃과 나무들은 모두 얼어붙고 앙상한 줄기가 찬 바람에 애처롭게 떨며 스산한 겨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잠시 옅은 햇살이 마당에 오면 화창했던 봄날의 꽃들이 그리워 얼어붙은 땅속 어딘가에 움츠리고 있을 뿌리들에게 마른 낙엽을 덮어주고 안부를 묻곤 한다. 어미 꽃들이 남기고 간 씨앗들의 얕은 숨소리에도 자주 귀 기울이게 된다.
울적한 심사를 탓하듯 길고양이들은 군데군데 살얼음이 낀 마당을 힘차게 내딛고, 텅빈 겨울 하늘로 산까치들은 먹이를 구해 무리 지어 날고 있다.
어둡고 긴 겨울밤이 아쉬워 마른 가지들을 모아 장작을 피운다. 장작불 주변에 한참을 서성이다 타다만 숯더미를 걷어내고 아직 온기가 남은 새하얀 재들을 쓸어 담아 빈 밭에 뿌린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형체가 없어져도 화창한 봄날 환생하길 바라던 홍난파의 가곡 ‘봉선화’가 홀로 겨울밤을 태운 장작 내음을 타고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것 같다. /선돌 최 헌 (시티팜뉴스 발행인)
그러고보니 추위는 모두에게 다가오지만 겨울은 각자에게 다르게 다가오는듯한 생각에 뭔가 신선한 기분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촌놈이라 선돌님의 초겨울 풍경 묘사가 낯설지 않네요, 하지만 선돌님의 서정적 마음을 노래한 글이 나를 어릴적 고향으로 데려갑니다.
행복하고 마음 추울 날 없는 멋스런 시골농부 선돌님을 응원합니다.
갑자기 배추에 과메기 싸서 먹으면 이 겨울 훌렁 지나갈 듯한 느낌이 오네. 상상으로라도 과메기와 배추 해치우고 또 일주일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