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그리운 새해

칼럼ㆍ기획

햇살 그리운 새해

갑진년 새해를 맞으며

시티팜뉴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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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새해가 시작됐다. 시리게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들의 날개짓도 새해를 맞아 힘이 넘친다.

영하의 추위에 잔뜩 움추려 지내는 날이 많지만 한낮에는 화창한 햇볕이 따사롭기만 하다.

담장의 사철나무와 대문 옆 종려나무, 그리고 멀찍이서 의연한 자태를 잃지 않는 소나무의 푸른 잎사귀마다 햇빛이 남극의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마당에는 잎을 떨군 꽃나무들과 함께 감나무와 벚나무들이 알몸으로 그리운 햇살을 맞고 있다. 멀리 보이는 산들도 햇볕에 언 몸을 뒤척이며 기지개를 켜고 조금씩 자라고 있다.

태양이 지구와 잠시 떨어져 앉은 겨울처럼 우리도 조금씩 떨어져서 더욱 그립고 고마운 계절이다.

 

온종일 하릴없이 남창에 기대 해바라기를 하고 마당을 서성이다 거름통을 뒤적여 본다.

텃밭 한구석에 잡풀과 잔가지 등을 대충 쌓아두다가 1년전 폐목재 파렛트로 마당 한켠에 거름통을 만들어 두었다. 여름철 쌓아둔 무수한 잡초들이 뜨거운 태양과 장마비를 껴안고 익어 간 자리에 가을철 마른 낙엽들이 더해졌다. 탄소와 질소의 비율인 탄질율을 맞추어야 한다는 얘길 듣고 틈틈이 가축분 퇴비와 함께 적당히 삭혀 둔 음식물 찌꺼기도 넣어 두고 있다. 식물성인 탄소와 동물성인 질소의 비중을 어느 정도 맞추어줘야 발효가 잘되고 양분이 많은 거름이 된다고 한다. 매서운 추위에 퇴비들은 쇠스랑이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얼어 있다.  한번씩 들춰보면 서로 엉겨붙어 제법 온기와 함께 거름익는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거름을 만들려면 조화와 균형이 중요하다. 탄소와 질소, 식물성과 동물성의 조화. 사람도 잘 익으려면 안과 밖, 행동과 내면이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나설 때 나설 줄 알고 물러설 때 물러설 줄 아는 지혜가 악취 대신 구수한 거름 향기를 만든다. 잡담과 수다로 범벅된 술자리를 하고 나면 숙취와 우울감이 힘들지만 며칠을 못 견디고 마을버스를 타고 시내로 발길을 옮기게 된다. 시골생활을 자처한 이유 중 하나가 불필요한 관계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탓도 있었다. 그러나 때로 은둔이 고립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세상살이가 사람살이가 아니겠는가. 익숙한 친구의 호출이 늘 설레이게 한다.

       

조그만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순환 생태농법을 실천하는 것이 도시농부에게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작물들도 계절마다 바뀌는 햇살과 바람과 비를 맞으며 서서히 자신의 생명을 익혀가고 싶어할 것이다. 대량 생산을 위해 화학비료와 영양제로 급하게 덩치만 키운 쭉정이보다 자연이 키운 땅심으로 서서히 여문 알곡을 세상에 선물하고 싶을 지도 모른다.


살면서 가끔씩 시골 출신 친구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50여년전 대다수 시골은 도시에 비해 거의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했고, 농사일은 힘들었다.

하루 세끼를 때우기에 급급했던 아이들이 들로 산으로 다니며 나무 열매나 칡뿌리 등을 구해 먹고, 강에서 멱을 감다 민물고기나 개구리 등을 잡아 먹었다는 어린시절 추억담은 온실속에 자란 도시출신들에게는 부러움이기도 하다. 자연 속에서 맘껏 뛰놀며 오염되지 않은 신선한 먹거리를 먹고 자란 야생의 아이들은 도시의 아이들보다 건강할 수 밖에 없다. 이제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맘껏 아이들이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헛된 낭만이나 철지난 꿈일지도 모르겠다.

값싼 공산품처럼 우리의 먹거리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자본주의 논리에 잠식되듯 우리네 삶도 자연과 멀어지면서 중심을 잃어가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라도 자연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새해라고 달라질 것은 없다고 하지만 누구에게나 처음 맞는 새해임이 분명하다. 나이가 한 살 더 들어서, 생각과 시야가 달라지고, 무엇보다 무수한 지난 경험들이 늘 우리를 새롭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 얼어붙은 땅속에서는 이 세상에 유일한 생명들이 탄생을 기다리고, 나는 또 다른 나로 부단히 태어나고 있다. /선돌 최헌(시티팜 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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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風竹軒
선돌 님의 글을 읽고 시간이 지나가고 있음을 인지합니다.
자연의 선순환은 때에 맞게 잘도 찾아오는 것같습니다.
텅비어 있는 선돌님의 밭에서 올해의 봄소식을 확인 보고 싶습니다.

언제나 맛있고 고소한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미필
선돌님의 글을 읽노라면 늘 가슴이 따뜻해져옴을 느낍니다.
시골 농촌의 겨울 풍경 묘사가 눈 앞에서 수채화를 보듯 어찌 그리 서정적인가요?
덕분에 기억의 곳간 저 구석에 있던 고향 둔덕을 떠올립니다.
올해도 평화로운 한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시티팜 뉴스와 선돌님의 건승을 응원합니다.
susu
글을 읽으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새해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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