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봄날의 유혹

칼럼ㆍ기획

눈부신 봄날의 유혹

떨칠 수 없는 본능

시티팜뉴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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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을 거역하지 못한 대가는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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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하루종일 보이지 않던 한 살배기 검은 길고양이 네로가 온몸에 심한 상처를 입고 돌아왔다.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3월 중순에도 좀체 집 밖을 나서지 않던 네로가 며칠째 보이지 않다가 사흘쯤 지났을 때인가. 이른 새벽에 한쪽 발을 절룩거리며 대문으로 들어서는 녀석을 살펴보니 뒷다리에 온통 물린 자국이 선명했다. 어린 수컷이 발정기를 견디지 못해 영역 싸움을 벌이다 다친 것이다. 고심 끝에 승용차에 태워 동물병원에서 털을 제거하고 상처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뼈가 부러지지는 않아 항생제를 투여하고 상처를 소독한 뒤 붕대로 동여매는 응급처치를 하고 돌아왔다. 당시 수의사는 일주일 정도 입원을 해야 안전할 것 같다고 했지만 다행히 병원을 다녀온 네로는 며칠이 지나자 다시 예전의 생기를 되찾아 안심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던지 다리뿐 아니라 온몸에 물리고 할퀸 자국이 선명해 살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야생의 길고양이는 10년 넘게 사는 집고양이에 비해 수명이 평균 2, 3년에 불과하다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어미로부터 버림받아 죽거나, 겨울철 한파나 영양실조, 오염된 먹이 등과 함께 영역싸움 과정에서 입은 상처로 일찍 죽는다고 한다. 상처 난 네로를 동물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며칠 동안 직접 상처를 소독하고 약국에서 구한 항생제 연고를 발라주었더니 다행히 조금씩 상처가 아물고 있다. 그러나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아 언제라도 발정기가 되면 또다시 치열한 전장으로 나설 것이다. 생명의 위험을 뛰어넘는 무서운 본능이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법칙이 지배하는 야생에서 그들은 본능적으로 투쟁하고 때론 순응하며 살아가야 한다.

 

초여름 날씨에 잡초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며 애써 가꾼 주변의 화초들을 위협하고 있다. 틈틈이 뿌리째 뽑아 보지만 질긴 생명력은 무서울 정도다. 울타리 부근의 사철나무와 복숭아나무들을 포승줄처럼 칭칭 감고 생존하는 넝쿨들은 날카로운 낫으로 일일이 잘라내도 땅속 깊이 숨겨둔 그들의 끈질긴 본성을 뿌리뽑기란 여간해선 힘들다.

 

본성에 가까운 욕망과 욕정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다. 그 무서운 본능에 이끌려 수없이 좌절하고 상처를 입는다. 불가에서는 오욕칠정(五慾七情)과 탐진치(貪瞋痴)를 벗어낼 수 있어야 해탈할 수 있다고 하지만 어찌 쉽겠는가. 숱한 후회와 번뇌의 시간들을 지나고도 여전히 비교하고 시기하며, 갈망한다. 잡초 같은 자신의 생각에 집착하고, 넝쿨처럼 주변을 휘감고, 본능에 이끌린 길고양이 마냥 거리를 헤매인다. 화려한 봄날, 눈부신 유혹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아침부터 화단의 잡초를 뽑고, 울타리의 넝쿨을 없애느라 온몸에 땀이 흥건하다. 일찌감치 찾아온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잠시 그늘에 앉아 있으면 어느새 사념이 바람결에 사라지고 무심한 휴식이 달콤하게 느껴진다. 잠시 여유를 찾아 둘러보니 잡초에 시달리던 꽃들은 생기를 되찾은 듯 선명하고, 울타리의 사철나무는 사슬에 풀려난 듯 살랑댄다.

 

그러나 머지않아 여름이 오면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잡초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땅속 깊이 뿌리를 감춰둔 넝쿨들은 다시 햇살을 찾아 질긴 생명력을 과시할 것이다. 녹슨 낫과 호미를 갈아두고, 뜨거운 본성이 우글거릴 여름의 전장을 준비해야 한다. 상처가 아문 길고양이 네로는 붉은 딸기가 탐스러운 텃밭을 지나 다시 대문 밖을 어슬렁거린다. 화려한 봄 향기에 취해 노랑나비가 날아든다/ 선돌 최 헌(시티팜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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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석송
이야기가 참 재미롭네요.
Kang
어느덧 여름의 길목에 와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군요. 흥미롭고, 정감있는 글을 대하며 더 왕성한 계절에 대한 진지함과 더불어 기대감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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