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먼저 사람을 알아본다'
부산 금정구 선동의 부산도시농업연구회 윤보근 회장(67)은 원예작물 신품종 육종에 심취해 평생을 식물과 함께 살고 있는 재야의 숨은 식물학 고수로 알려져 있다.
철마산 고개길 숲속에 위치한 윤 회장의 농장은 1,200평 규모로 열대식물인 천사의 나팔꽃을 비롯 시계꽃, 불수감, 석창포 등 쉽게 볼 수 없는 다양한 품종의 원예작물들이 5개동의 하우스를 중심으로 발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빼곡히 자라고 있다.
28년전 부산 중구 중앙동에서 사계절이란 대형 화원을 운영하면서 이곳에 농장을 마련한 윤 회장은 최근엔 화원 운영은 거의 접어둔 채 10년 넘도록 이곳에서 다양한 품종의 원예작물을 키우고 신품종을 개발하기 위해 하루해를 다 보내고 있다.
일찍이 식물재배에 남다른 관심을 지녀 중학시절 부터 원예 관련 전문서적을 탐독했던 윤 회장은 동아대 농대 원예학과로 진학해 대학 시절 국가기술자격증인 원예종묘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농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지금까지 거의 반평생을 식물과 함께 지내며 식지 않는 열정과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윤 회장은 20년 전부터 신품종 개발에 나서 2011년 천사의 나팔꽃 신품종으로 밝은 노란색 꽃이 피는‘명월’을 비롯 2016년 흰색의 겹꽃이 피는 ‘오리엔탈 뷰티’, 2019년 따님의 이름을 따 명명한 ‘플라워오브 지혜’ 등 모두 4종의 신품종을 개발해 국립종자원의 ‘품종보호권 등록증’을 보유하고 있다.
박을 비롯 나팔꽃, 거제왕찔레 등 원예작물 중 덩굴성 식물을 유난히 좋아하는 윤 회장은 평소 전국을 다니며 다양한 품종의 육종 재료를 모아 교잡을 통한 선발 육종 형태로 신품종 연구에 열중하고 있어 조만간 다수의 신품종 등록을 추가로 준비하고 있을 정도로 꽃이 지닌 다양한 색상과 모양의 신비에 빠져 있다.
특히 박 품종 개량에도 관심을 지녀 전세계 박 품종을 구해 길이가 긴 다양한 박을 자신의 농원에서 육종하고 있는 윤 회장은 “박은 다양한 요리가 가능한 건강 기능 작물”이라고 소개했다.
윤 회장의 식물 사랑은 인터넷에서도 전국적 명성을 떨치고 있어 2004년 개설된 ‘한국종자나눔회’란 다음 카페에 ‘도시의농부’란 운영자로 활동하고, 2007년에는 자신이 개설한 다음 카페인 ‘한국신품종연구회’에서 카페지기로 활동하며 전국의 꽃 애호가들 사이에 ‘식물 박사’로 통하고 있다.
윤 회장은 평소 “식물이 사람을 먼저 알아본다”라며 식물 재배에 대한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강조하며 농업기술센터, 평생교육원 등에서 ‘식물의 생리 및 과수 재배 방법 등을 주제로 강의를 하는 한편 화훼 신품종 육종에 대한 관심과 대중화를 위해 2017년 도시농업공동체인 ‘부산도시농업연구회’를 결성해 자신이 육종한 씨앗을 회원들에게 나누고 함께 재배하며 신품종 연구 및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2020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 꽃 박람회 한국관에 참가해 자신이 육종한 신품종 화훼를 세계 무대에 선보이기도 한 윤 회장은 2018년 종자산업 육성 공로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표창을, 2021년에는 도시농업 육성에 기여한 공로로 부산시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대학원생 시절 당시 용어조차 생소했던 ‘관광농업’에 대한 논문을 국내 최초로 발표하기도 했던 윤 회장은 식물을 재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꽃의 아름다움을 일반인들과 공유하고 치유와 힐링의 관광자원으로 승화하는데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 자신이 농원에서 가꾼 화초들과 희귀 식물들을 활용해 식물공원을 조성하는 꿈도 키우고 있다.
윤 회장은 “시중에 판매되는 화훼류 상당수가 주로 네덜란드 등지에서 수입하고 있어 우리나라도 농작물뿐 아니라 화훼류 신품종 개발을 통해 꽃 종자 육성 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남다른 식물 사랑에 대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것 뿐”이라며 “작은 씨앗이 발아해 시간이 지나 지상에 화려한 자태를 드러내는 것을 보면 말할 수 없는 희열이 느껴진다”며 식물과 함께한 반평생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인적이 드문 철마산 기슭에 숨겨진 시크릿 가든에서 식물들과 교감하며 도인처럼 지내는 윤 회장의 거칠고 두툼한 손에는 만물을 잉태하고 가꾸는 따뜻한 숨결이 느껴졌다. / 시티팜 뉴스
윤보근 회장이 개발한 천사의 나팔꽃 신품종 '오리엔탈 뷰티'(사진 위)와 '명월'